[보드게임] 팬데믹 레거시 플레이 일지 - 9월 게임 이야기

9월 플레이 인원

 - 가넷 리(검역 전문가), 솔라(연구원)

* 본문에 팬데믹 레거시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후 팬데믹 레거시를 플레이할 예정이신 분은 읽기를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Prologue
나는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부모님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을 하셨고, 아무리 포장하려 해도 절대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행복했다.

밤늦게까지 일하고 돌아온 부모님과의 늦은 저녁 식사는 이제는 하도 오래되어 기억도 희미해졌지만 즐거웠다는

감정은 남아있다.

조금은 지루할지 모르는 일상이 깨어진 것은 내 나이 8살 때,

늦은 밤에 귀가하던 부모님이 괴한들에 의해 돌아가신 것이 시작이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의 곁에는 꼬깃꼬깃하게 접혀진 그날의 일당이 흩뿌려져 있었다고 한다.

괴한들은 돈을 목적으로 부모님을 습격한 것이 아니었다.

내 부모님이 흑인이었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혼자 남겨진 나는 고아원으로 보내졌고, 1년 뒤 추수감사절에 백인 부부에게 입양되었다.

그 집에 들어간 첫 날 내가 느낀 감정은 백인에 대한 분노도,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도, 낯선 환경에 대한 두려움도 아니었고

바로 혐오감이었다.

식탁에 차려진 난생 처음보는 호화로운 추수감사절 음식들을 보며 기뻐하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었다.

나를 입양한 부부는 이미 2살짜리 딸을 키우고 있었지만 인종차별 문제로 고아가 된 내 이야기를 듣고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당시로는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충분히 별종이라 할 수 있는 내 양부모들은 나를 친자식처럼 아끼며 사랑해주었다.

피부색에 따라 사람을 가리는 사회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지만 양부모는 주위에서 여전히 별난 사람들 축에 속하는 대접을 받았다.

좋은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나에겐 친구가 없었다.

백인 친구들은 나를 흑인으로 바라보았고, 흑인 친구들은 나를 백인으로 바라보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러한 편가름은 거의 없어지고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만

이미 겪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성인이 되고 대학을 졸업할 때즈음엔 그러한 차별은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처럼 보였다.

더욱 깊숙히 은연중으로 숨어버린 것 뿐이었다.

양부모의 지원으로 명문대를 진학하였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교수는 내 질문을 무시하기 일쑤였고, 내 학업을 제대로 평가하지도 않았다.

그나마 나를 인정해준 사람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일한 공사장의 현장소장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그와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이 늘어났고, 그로 인해 건축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전공을 바꾸고 필사적으로 공부하면서 일을 겸한 덕에 졸업하자마자 나는 내 작은 사무실을 차릴 수 있었다.

나에게 건물을 부탁하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성공한 흑인들이었다.

회사가 어느정도 커진 뒤에는 백인들도 제 발로 회사를 찾아왔지만 회사 수익의 대부분은 짙은 피부의 사람들에게서 발생했다.

회사가 커짐에 따라 내가 지은 건물들이 이름있는 잡지에 실리거나 각종 시상식에 노미네이트 된 적은 있었지만

백인 동료와 공동설계로 이름 올린 작품들 외에는 수상 받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내가 설계하고 일부러 이름만 부하직원의 것으로 올린 것이 수상한 적도 있다.

이쯤되니 오기가 생겨 평생 일에만 매달렸다.

그러다보니 여동생이 결혼하여 조카들을 낳을 동안에도 결혼하지 못했다.

일에 매달리면서 커피를 입에 달고 살다보니 커피 맛에만 더 민감해졌다.

그래도 그 성과 덕에 이제는 더이상 피부색으로 내 실력을 차별하는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내 노력의 결과 덕분인가?

그저 세상이 바뀌었기에 대접이 변한 것 뿐은 아닌가?

그렇다면 내 평생의 노력은 아무 의미없는 것이 아닌가?

차라리 세상이 변하지 않았다면 이와 같은 허무함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완전히 인종차별이 없어진 것도 아니다.

여전히 고통받는 이들은 존재한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단순히 흑과 백이 아니라 세계가 개방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섞여 살게 되었고 새로운 차별은 계속해서 생겨났다.

없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 뿐이다.

내가 받는 찬사들도 그런 속내를 덮기 위한 허울 뿐인 것이다.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세상은 추악할 뿐이다.

그런 생각이 확신으로 변할 무렵, 그들을 만났다.

나처럼 지금의 세상에 환멸을 느끼는 자들을...


9월 1일

Team HOPE에 새로 들어온 명령은 놀라운 것이었다.

오사카의 군사기지에 있는 군인이 피해망상에 빠져 CodA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뿌리고 다닌다는 것이다.

이미 마오 교수를 통해 그러한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우리는 그 군인의 이야기가 단순한 망상이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군에서는 이미 그를 찾아 격리 조치를 취하라는 명령이 떨어졌다고 하였지만 우리는 그와 만나볼 필요성을 느껴

검역 지원을 한다는 명분으로 가넷 리 대위를 오사카로 파견했다.


9월 9일

가넷 리 대위는 무사히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이클 데이비슨 하사.

그는 우리가 찾아와 주리라 믿고 소문을 흘렸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우리에게 충격적인 진실이 담겨 있는 진술서와 바이러스 개발 기록을 넘겨주고 잠적했다.

그 진실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무섭고 잔혹한 것이었다.

우리의 예상대로 바이러스 CodA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퍼져 있는 ARM, YG, Blue 조차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이 추악한 질병들을 만든 조직의 이름은 바로 조디악.

더 무서운 것은 그 조디악이 이 질병들을 전세계에 퍼뜨리는데 우리 질병관리본부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장악된 그룹들이 구호활동을 빌미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질병을 퍼뜨렸다.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조디악에 속해 있는지는 우리도 모른다.

심지어 군권조차도 조디악에 의해 오염되어 있었다.

그들이 전세계에 군사기지를 새우고 나서 질병이 더욱 만연한 것은 그 군사기지가 전염원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슨 하사는 군인으로서 조디악 그룹을 호위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가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고

목숨걸고 자료를 훔친 것이다.

그가 남긴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Team HOPE에도 조디악 일원이 있다는 것이 나타났다.

그 인물은 바로...

나와 라이언의 하나뿐인 외삼촌 시우 D 존슨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세계를 돌며 군사기지를 건설하는 임무에 직접 뛰어든 것은 자제속에 숨겨진 질병원들이

무사히 전달되는 것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미 외삼촌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피해망상 군인 수색 성공)


9월 17일

우리는 이 모든 사실을 숨겨야만 했다.

누가 조디악의 일원인지 알지도 못한 채 이 사실을 공개해버리면 지금도 지연되고 있는 치료제 개발의 길이 더욱 늦어지기

때문이다.

자비에르 교수는 우리의 정보가 조디악에 세고 있는 것을 역이용하기로 했다.

이미 외삼촌이 떠난 이상 우리가 조디악의 존재를 알고 있는 것은 발각되었을 것이고 그 사실을 전해 들은 조디악소속들은

은연중에 우리를 경계할 것이 분명하니 이를 통해 그들을 색출하자는 것이다.

설령 이를 읽혀 하위요원들에게 정보가 전달되지 않는다해도 그들은 평소처럼 업무를 해야하니 우리의 일을 방해하지는

못할 것이므로 더더욱 해볼만 했다.

'공식적'으로 그들은 우리의 일을 돕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일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두가지가 반격의 열쇠가 될 것이다.

(9월 승리)

(게임종료 업그레이드 : 초기 군사기지 서울, 캐릭터 업그레이드 - 수상한 배경 -> 검역 전문가)


Epilogue

늦가을의 폭우가 애틀란타를 뒤덮고 있는 와중에 그 빗속을 가로질러 어둠속을 거니는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주변을 경계하며 이윽고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골목을 이리저리 가로 질러 끝에 다다르자 낡디 낡은 차량이 나타났다.

철컥

남자가 차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뒤에서 거친 금속음이 났다.

"어딜 가시려는거죠, 존슨씨?"

차를 타려던 남자 시우 D 존슨이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그의 눈에 보인 것은 자기처럼 비에 흠뻑 젖은

피에트로가 총을 겨누고 있는 것이었다.

"여긴 어떻게 찾은건가?"

총이 자신을 겨누고 있음에도 시우는 긴장한 기색 하나 없이 되물었다.

피에트로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

"찾긴요, 전에 추천해주신 커피를 사려고 수입상에 들렸다가 우연히 발견하고 종일 따라다닌 것 뿐인데요."

"허허, 내 버릇이 내 발목을 잡았구만 그래."

너무나도 허무한 답변에 시우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처음부터 계획된 접근이었던건가요?"

"그래."

너무나도 당당한 시우의 대답에 피에트로는 소리질렀다.

"나는 그렇다치고! 자기 조카들까지 속이는 건 너무 잔인한거 아닙니까!"

"우연이었네. 그 꼬마들이 거기서 일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지."

시우는 자기의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이 일이 얼마나 오래전부터 계획되어있었는지 아는가? 최소 10년이야. 내가 처음 그들을 알게 된 게 10년전이니.

 그때만해도 그 꼬마들은 학생에 불과했어. 그런데 계획을 준비하느라 잠시 신경쓰지 못한 사이에 질병관리본부에

 들어가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지."

조금은 힘이 빠진 목소리로 피에트로가 물었다.

"미안한 감정따윈 전혀 없는 겁니까?"

"전혀. 내 신념을 걸고 한 일인데 미안해할 필요가 있나. 난 지금도 이게 필요한 일이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네."

"무슨 그런 망발을...!"

"이 세상은 썩었어. 별의 별 이유로 사람들끼리 편을 가르고 서로를 비난하며 싸우고 있지. 하지만 지금을 보게.

 질병이란 큰 적이 나타나니 세상 모든 사람들이 협력하고 있지 않은가? 적이 없어지면 다시 또 편을 나눠 싸우겠지.

 그러니 적절히 조절해 줘야해. 지금처럼 말이야."

시우의 확고한 대답에 피에트로는 할 말을 잃었다.

"그 들고 있는 총은 장식인가? 장식치고는 무거워 보이는구만."

"앞으로도...계속 이 일을 하실겁니까?"

"물론이지. 한번 실패했다고 포기할수야 없지."

변치 않은 답변에 피에트로가 총을 들고 있던손이 조금씩 흔들렸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다시...볼 수는 없겠군."

번쩍

 콰과광

시우가 돌아서는 순간 천둥번개가 쳤다.

피에트로는 팔에 힘이 빠진 듯 겨누던 총을 내렸다.

"망할 영감탱이..."

비에 흠뻑 젖은 피에트로는 터덜터덜 골목속으로 사라졌다.